결혼을 하고 7년여가 지날 무렵, 언제쯤 아이를 가질 거냐고 묻는 엄마에게 불편한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고.
예상치 못한 얘기를 들은 엄마는 잠시 눈을 허공에 두었다가 융단폭격처럼 말을 쏟아냈다. 처음은 걱정. “어디 몸이 안 좋니?” 두 번째는 분노. “애를 왜 안 낳겠다는 거니?” 세 번째는 설득. “딸 하나만 낳자. 엄마한테는 딸이 있어야 행복해.” 대학부터 취업, 결혼까지 알아서 뭐든 잘한다고 늘 칭찬하시던 엄마는 이번만큼은 딸의 결정에 미소 짓지 못했다. 선택을 존중받지 못한 사람은 나인데 오히려 상처는 엄마가 받은 것처럼 보였다.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신 건 말할 필요도 없다. 아, 네 번째는 존중을 가장한 포기였다. “그래 네 마음대로 살아라.”
당시 엄마는 ‘딩크’라는 단어가 있는지도 모르셨다. 나중에 미디어를 통해 이 세상에 ‘딩크족’이라는 신인류가 발아했다는 걸 알고 나서야 아주 천천히 딸의 결정을 받아들이셨다. 엄마의 혼란과 걱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당신의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비정상 가족일 테니.
졸업, 취업, 그리고 결혼. 이후 임신과 출산까지. 많은 여성들의 삶이 컨베이어벨트 위에 올려놓은 것처럼 느껴진다.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비슷비슷한 삶의 흐름은 공동체에 안정을 가져오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오랜 시간 샛길을 허용하지 않고 하나의 정의를 고집한 부작용이 지금 터져나오고 있다. 딩크를 비롯해 비혼, 임신 중단, 최근 격렬한 논쟁을 일으킨 국가대표 양궁 선수의 짧은 머리까지 분노와 투쟁을 견인하는 이분법적 사고가 염증처럼 사회에 퍼져 모두를 아프게 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SNS와 각종 미디어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건 ‘다름’이다. 비장애인과 장애인, 젊음과 나이 듦, 성별이 갈등의 원인으로 꼽힌다. 나고 자람이 모두 제각기니 다를 수밖에 없건만 성장의 울타리 속에서 한번도 다름에 대해 배워보지 못한 이들은 타인을 쉽게 차별하고 편견의 상처를 남긴다. 존중과 존중이 대척하며 누구나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되는 혼란한 시기, 시선과 편견의 불편함을 이겨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다.
V존은 예쁠 필요 없이 그저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는 여성 생식기 케어 브랜드, 땀 흘리며 몸으로 부딪치는 스포츠를 제안하는 여성 전용 스포츠 플랫폼, 여성의 욕구 또한 존중받아야 한다는 성인용품 편집숍, 야한 걸 좋아해서 야한 그림을 그린다는 여성 작가의 불편한 이야기를 전한다. 묵묵하게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주체적인 삶에 대한 새로운 정의까지 비춰줄 수 있을 것이다.
에디터 서희라
사진 언스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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