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외음부와 질에 덧씌워진 사회적 시선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숨겨야 하거나, 예뻐야 하거나. V존 케어 전문 브랜드 바솔의 신다영 대표는 포장하거나, 감춰야 할 이유 없이 질은 그냥 질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에서만 V존, Y존을 함께 사용하더라고요. 정확하지는 않지만 Y존은 원피스나 스커트가 몸에 닿아서 생기는 형상을 두고 부르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 모습을 가려주는 속바지나 속치마에 대한 이야기가 Y존 다음으로 가장 많이 따라붙고요. 그런데 Y존은 그 부분이 보이면 부끄럽다는 전제를 두고 한 말이니 옳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또 Y존은 남성도 해당되고요. 바솔은 버자이너 솔루션(Vagina Solution)의 줄임말이에요. 버자이너(Vagina)는 여성의 생식기를 뜻하는 단어로, 여성 생식기에 도움이 되는 제품을 만든다는 원칙을 문자 그대로 담은 브랜드 이름이에요. 해외에서는 비슷한 단어로 벌버(Vulva)라고도 해요. 두 단어만 봐도 V존이 정확하다고 할 수 있어요.
바솔을 창업하기 전 화장품 업계에서 오랫동안 일했어요. 다양한 화장품이 세상에 나고 지는 걸 봤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V존 케어 제품들이 과대광고로 포장되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이를테면 ‘조임이 개선돼 남편이 좋아한다’, ‘18세로 돌아가요’, ‘하얗게 된다’ 등 섹슈얼한 부분을 강조하는 거죠. 조임이 좋아야 하고, 색이 맑아야 하고, 좋은 향기가 나야만 하는 곳인 것처럼 얘기하는 게 이상했어요.
질과 외음부는 개개인에 따라 모양, 색상이 다 달라요. 건강 외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는 곳이죠. 그저 질과 외음부는 쓰라리거나 불편하지 않으면 돼요. 성생활 파트너를 위한 곳이 아니고요. 그런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안타까웠어요.
지난여름에 부끄러워하거나 감추지 말자는 ‘낫 샤이(Not Shy) 캠페인’을 했어요. 그런데 솔직하게 질이면 질, 외음부면 외음부라고 하지 왜 영어를 쓰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대다수가 MZ세대였는데, 20대 초반 여성 중에는 오히려 ‘그런 단어를 말하는 게 부끄러운 일이냐’고 되묻는 사람도 있었어요. 제 예상보다 젊은 여성들의 인식은 훨씬 더 앞서 있었는데 몰랐던 거죠. 반면 중년으로 갈수록 여전히 V존 케어에 대해 모르는 분이 많더라고요. 씻는 방법부터 관련 제품이 판매되는 것도 모르는 분들이 있었죠. 연령에 따라 건강 정보나 인식의 차이가 크다는 걸 알았죠.
사실 저희 웹사이트에서는 질, 외음부 단어를 사용해요. 그런데 광고는 상황이 달라요. 직접적으로 단어를 언급하면 의료법상 과대광고 소지가 있어서 사용할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의견 주신 고객님께 사실대로 전달하고 웹사이트에서는 우리말을 쓰고 있으니 방문해달라고 하나하나 댓글을 달았어요.
콘텐츠를 만드는 데 한계를 느끼고 있어요. 단어뿐 아니라 이미지 사용도 특별한 기준 없이 검열에 걸리곤 해요. 사람들은 질, 외음부라는 단어를 이제 일상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세상의 기준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초등학생 딸이 있어요. 어느 정도 큰 후에 외음부 씻는 법을 가르쳐주었더니 지금은 익숙하게 씻게 됐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수영을 하고 샤워실에서 씻는데, 다른 아이들이 ‘쟤 저기 씻어’ 하더라고요. 8~9세 정도밖에 안 된 아이들이었는데, 그 나이만 돼도 외음부 씻는 걸 이상하게 생각한다는 걸 알았어요. 함부로 손을 대면 안 되는 곳, 쉬쉬해야 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고정된 거죠.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몸교육’을 해보고 싶어요.
보통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성교육은 정자, 난자가 만나서 어떻게 임신하게 되는지 알려주다가 결국엔 조심해야 한다고 마무리하잖아요. 근데 그런 교육을 받는 아이들 연령대는 대부분 초경도 시작하기 전이에요. 순서가 안 맞는 거죠. 그전에 내 몸이 어떻게 생겼고, 어떤 생리 현상이 일어나고, 성장하면 임신을 할 수 있는 몸임을 알려주는 거예요. 여성이기 때문에 책임질 일들이 많잖아요. 성(sex) 이전에 내 몸부터 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많은 여성들이 이제 자신의 건강 상태를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산부인과에 쉽게 가는 등 자신을 돌보는 일에 대해 적극적으로 변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가족이나 친구와 대화할 때 아무렇지 않게 ‘나 감기 걸렸어’라고 말하듯 ‘나 질염이래’라고는 쉽게 말하지 않죠. 이런 대화가 자연스러워지길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에디터 서희라
사진 맹민화, 바솔
디자인 박솔미
no.11 야한 거 좋아한다고 왜 말 못 해 (1) | 2023.11.24 |
---|---|
no.11 축구부터 주짓수까지, 스포츠에는 성별이 없어요 (1) | 2023.11.24 |
no.11 딩크를 바라보는 시선 (0) | 2023.11.24 |
no.10 오르가슴에 관한 오해와 진실 (1) | 2023.11.23 |
no.10 방금 그거, 오르가슴이었어? (0) | 2023.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