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친화 섹스 토이 숍 플레저랩의 곽유라 대표는 불편한 이야기를 듣다가 이제는 하는 사람이 됐다.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작은 파장이라도 만들 수 있다면 지금의 불편함이 언젠가 평범한 일상이 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플레저랩이 창문을 가리거나 어둡게 해놓은 곳이 아니어서 그런지 처음 오픈할 때부터 네일 숍이나 카페라고 생각한 분은 있었어도 이상하거나 불편하게 보진 않았던 것 같아요. 바뀐 게 있다면 손님들의 변화예요. 처음에는 여성들이 자신을 위한 제품을 사기 위해 왔다면 지금은 갱년기 엄마를 위한 제품, 사별한 시아버지를 위한 제품을 사러 오는 분이 엄청 많아졌어요. 아들이 엄마 손을 잡고 온 적도 있었어요! 물론 아들은 엄마가 편히 구경하시라고 나가 있었지만요.
확실히 많이 변했어요. 섹스토이 숍뿐 아니라 성인용품에 대한 생각도 긍정적으로 바뀐 게 느껴져요. 재밌는 건 예전에는 ‘여자가 사장?’이었다면 지금은 여자 사장이 아니면 안 되는 분위기예요. 여자가 써보고, 판매하는 제품에 대한 신뢰가 높아요. 섹슈얼 시장을 이야기할 때 이제 주어가 ‘여자’가 됐더라고요.
많이 좋아진 건 사실이지만 완전히 양지로 올라왔다고 하기는 힘들어요. 실제로 저희 매장에 오는 손님을 보면 여성이든 남성이든 굉장히 점잖고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평범한 분들이에요. 그런데 저희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댓글을 보면 익명으로 쉽게 폄하하고 편견으로 낙인 찍는 사람도 여전히 많아요. 그런 댓글이 섹스 콘텐츠에 달렸다면 어느 정도 이해하겠지만 지극히 일반적인 여성 건강이나 교육 콘텐츠에도 달린 걸 보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느껴요.
플레저랩을 시작할 때 제품 판매만 생각하지 않았어요. 사실 잘 모르거나 쉬운 문제인데 오히려 어려워하는 분야가 성(sex)이잖아요. 그래서 교육적인 콘텐츠도 다뤄요. 여성 신체에 관한 해부학적인 내용이나 호르몬 등과 같은 콘텐츠를 만들어 올리고 있어요. 워낙 다양한 사람이 존재하니 호불호가 있을 수 있지만 시각을 넓혀서 최대한 부담스럽지 않게 제작하려고 고민을 많이 해요.
저는 괜찮은데 오히려 주변에서 걱정했어요. 저를 쉽게 보거나 성적 대상화할까 봐요. 그런데 그런 불편함은 느껴본 적이 없어요. 주변에서 걱정하는 이유가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잖아요. 여자가 자위나 섹스, 욕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돼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건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아주 정상적인 일이잖아요. 그럴수록 더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근에는 코로나19 때문에 예약제로만 운영하고 있는데, 상담은 플래저랩 오픈할 때부터 지금까지 문전성시예요(웃음). 주로 자신이 느낀 게 오르가슴이 맞는지, 또 자위나 섹스를 할 때 느낌이 오지 않는다는 고민, 아이들 다 결혼시키고 나니 이제야 욕구를 느끼는데 남편에게 부끄럽고 이게 정상인지 등을 이야기하세요.
저희도 처음엔 젊은 분들이 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중년은 관심 없을 거라는 편견이 있었던 거죠. 시간이 지나고 보니 젊은 사람들은 원하는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고,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어요. 그런데 중년층은 가족이나 지인에게는 물어보지 못하고, 어디서 정보를 얻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상담하러 오는 분들께 더 집중하고 콘텐츠 만드는데도 힘을 쏟으려고 해요.
공부뿐만 아니라 생각이나 가치관의 폭도 넓히려고 노력해요. 상담 후 나중에 후기를 들어보면 편견뿐 아니라 고정관념에 빠져 있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일례로 남성 제품은 남성만, 여성 제품은 여성만 쓴다고 생각하고 안내했는데, 실제로 고객님들은 같이 쓰거나 바꿔서 쓰는 일이 많더라고요. 후기를 보면 깜짝 놀라요. 그래서 이제는 남자친구, 여자친구라는 말을 쓰지 않고 파트너라는 단어를 사용해요.
저는 어릴 때부터 표현이나 생각을 명확하게 이야기하라고 배웠어요. 그래서 성욕이나 자위, 오르가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전혀 불편하지 않고 주변에서도 제가 하는 이야기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시간이 지나면 변하는 것들이 있잖아요. 과거에는 자위가 금기였지만 지금은 현대의학에서 정신적, 신체적으로 권장하는 행위가 된 것처럼요. 저는 꾸준히 불편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언젠가 욕구나 성적 취향이 마치 MBTI처럼 자신을 나타내는 표현 도구 중 하나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사실 섹스 이야기 싫어하는 사람 없잖아요.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눈치를 볼 뿐이지.
에디터 서희라
사진 맹민화, 플레저랩
디자인 박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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