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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11 야한 거 좋아한다고 왜 말 못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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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렛허 2023. 11. 24.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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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하다’는 수식어에는 수많은 사회적 담론이 형성되어 있지만 여기에 걸린 가장 강력한 규범은 ‘노출돼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 규범을 비집고 당당하게 야한 걸 좋아한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야한 그림 그리는 작가로 인스타그램 85만 팔로워를 거느린 민조킹이다.

 

 

Q 필명과 그림만 보고 남자라고 착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아요.

유명해지기 전에는 실제로 절 만나고 ‘여자였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정말 많았어요. 아무래도 야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남자라는 편견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남자로 오해하다 보니 SNS에서 제 그림을 보고는 여성 혐오하냐고 댓글 다는 분들도 많았어요.

Q 그래서 작가님 이름 앞에 ‘야한 그림 그리는 여자’라는 설명이 붙었나 봐요.

사실 야한 그림 그리는 여자라는 말은 제가 먼저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계속 남자일 거라는 편견을 가져서 제 소개를 그렇게 해야 오해가 없겠다 싶었거든요. 제가 여자임을 아는 분들은 새로운 시선으로 봐주니까 좋더라고요. 그전에는 성을 상품화한다는 부정적 시선이 있었다면 여자임을 알고부터는 ‘새롭다’, ‘당당하다’라고 응원해주세요.

 

a world just the two of us2019 ⓒminzo.king

 

Q 스스로 야한 그림 그리는 여자라고 커밍아웃(?)하는 데 부담은 없었나요?

야한 그림을 그린다는 건 야한 걸 좋아한다는 의미거든요. 실컷 그리고선 ‘사실 저는 야한 걸 좋아하지 않아요’라고 한다면 이상하지 않을까요? 그냥 야한 걸 좋아하는 게 저를 이루는 한 부분이기 때문에 말하는 데 부담은 없었어요. 물론, 주변에서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생각은 했었죠. 누가 그리느냐와 별개로 야한 콘텐츠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곱지는 않잖아요. 예전에 했던 인터뷰 기사 댓글에 ‘저 여자는 욕망이 가득하다’, ‘같이 살기 힘들겠다’는 안 좋은 글이 달리긴 했지만 소수였고 오히려 멋있다는 응원이 많아서 편견이나 시선이 개선되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Q 작가님 팬은 대부분 여성인 것 같아요. 유독 여성에게 사랑받는 이유를 생각해본 적 있나요?

제 팬의 90%가 여성인데, 제 그림에서 일종의 해방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주입식 교육으로 행동에 제약을 받았잖아요. 남자가 야한 그림을 보면 ‘남자니까 그럴 수 있지’라고 하지만 여자가 야한 그림 보면 그 이면을 보려 하죠. 그런데 제 야한 그림은 그런 제약에서 벗어난 느낌도 있고, 같이 그림을 즐기는 사람도 여자라서 주입식 교육으로 인한 죄책감 같은 게 희석되는 것 같아요.

 

짓궂은 장난 2020 ⓒminzo.king

Q 팬이 많아질수록 작품 수위에 대한 고민도 클 것 같아요.

팔로워가 급격하게 늘면서 반응에 따라 일희일비하던 순간도 있었고 완성된 작품을 수정해야 하는 고민도 늘 있었어요. 그런데 외부적 요소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왜냐하면 제 그림은 단순하게 노출이 많은 야한 그림이거나 성적인 행위에 포커스를 맞춘 게 아니고 사랑이라는 큰 주제를 가지고 있거든요. 사랑은 세상 사람들 누구나 하는 아름다운 거잖아요.

Q 주제가 낭만적이네요. 작품의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나요?

주변 이야기도 많이 듣고 보편적인 사랑 가운데서 소재를 찾는 편이에요. 그런데 최근에는 엄마가 돼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시간이 없어졌어요(웃음).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기 전 연애를 열심히 할 때는 불꽃 같은 영감이 솟았는데 말이에요. 열정의 자리에 안정감이 찾아오면서 제가 그리는 그림이 거짓이라고 생각하면 어쩌지라는 고민도 들어요. 그래서 앞으로 ‘제가 보여줄 수 있는 게 뭘까’ 하는 지점에서 그림의 범위를 확장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Q 그림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결국 사랑인가요?

제가 그리는 그림이 특별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일상 속 단편을 그린 그림이죠. 많은 사람들이 야한 동영상을 보고 섹스를 하잖아요. 게다가 우리도 그 과정을 통해 태어난 사람들인데 뭐 그렇게 감춰야 하나 싶은 게 제 솔직한 심정이에요. 보편타당한 사랑을 감출수록 더 음지화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보수적인 어른 중에서도 제 그림에 대해 야하지만 야하지 않다고 평하는 분도 많아요. 저는 그게 평범한 모습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불편한 시선 대신 좀 더 친근한 시선으로 봐주면 좋을 것 같아요.

 

에디터 서희라

디자인 박솔미

 


THEME NO.11

불편한 이야기


① 딩크를 바라보는 시선

② 질은 그냥 질이에요

③ 축구부터 주짓수까지, 스포츠에는 성별이 없어요

④ 야한 거 좋아한다고 왜 말 못 해

⑤ 섹스 이야기 싫어하는 사람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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